치과 이야기
사는 이야기자 갑자기 치과 이야기 해볼까..
6년 전 어느날, 새벽에 봄베이 사파이어 750ml를 20분만에 마시고 만취해서 횡단보도 건너다 자빠져서 앞니가 A자로 깨졌다. 내 비루한 신체중에 가장 잘 생긴 부위가 눈썹과 앞니였는데 앞니 사망..
당시에 자주 가던 강남의 치과에선 레진으로 예쁘게 때워줬으나, 이게 내구성이 불량해 반년 간격으로 다시 떨어진다. 이게 주로 음식 먹을때 뚝 떨어지는데, 음식 먹다가 떨어진것만 나열하면, 간장게장(당연), 삼각김밥(!), 샌드위치(!), 최근에는 맘스터치 싸이버거 .. 아니 햄버거나 샌드위치 하나 맘놓고 못먹는거다. 이런 더러운 경우가 어디있냐고!
그리고 뭐 먹다 떨어지면 어금니로 조각을 와자작 씹어버릴까봐 오물거리며 음식물 사이에서 레진 덩어리를 찾아야한다.. 그리고 다시 감쪽같이 끼워놓고 치과 갈 때 까지 버텨야함. 안그러면 영구 처럼 보인다.
치과 갈 때 마다 앞니 둘을 서로 붙이기도 하고, 아랫니랑 안붙게 조금 갈아서 떨어뜨려주기도 했으나.. 매번 1년을 못버티고 다시 떨어짐. 치과 입장에선 시간도 오래걸리고 가격도 싸서 별로 오는게 반갑진 않은 모양.
이 지경이니 돼지갈비를 먹다가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오빠는 먹는게 복스럽지 않다"라는 소리 까지 들었다. 다행히 일본 여행 3개월동안 잘 버티다가, 최근에 싸이버거 먹다가 떨어지곤 열이 뻗쳐갖고...
라미네이트와 크라운을 알아봤는데, 구글링 해보니까 어떤 치과의사가 확 눈에 띄는거다. 치과의사가 막 오덕인지 "하악하악 치과 장비계의 에르메스!" 하면서 장비 리뷰도 하고, 치아 색상 비교도 하고, 치과 시술 사진을 수십장씩 올려가며 이게 사실은 이런데 저건 저렇고.. 아무튼 지르코니아 짱임! 하며 글을 올리는게.. 와 이 사람은 자기 직업에 진심이구나, 이런 사람 개굿! 하고 예약함.
게다가 "예약 안하고 오면 상담시간 10분 제한 있음", "우리 존나 비쌈, 꼬우면 딴데 가던가" 하는 마인드가 뭔가 맘에 들더라고.. 근데 막상 병원 가서 마취 바늘로 쑤실 때 내가 부들부들 떠니까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쿡쿡 찌르는게 좀 츤데레 같기도 하고 자동 응답 멘트 같기도 하고 암튼 맘에들어..
첫 방문날 내 치아 상태를 보더니 "어휴, 님은 크라운 말곤 노답임" 해서 ㅇㅇ ... 그럽시다 하고 190만원 빡 결제 ㅠㅠ
둘째날에는 한 두시간 내내 드릴 소리만 들었다. 보통은 드릴 소리가 굵은 소리, 얄쌍한 소리 두가지로 들리던데, 이분은 덕후 의사라 그런지 드릴 소리가 한 다섯개 정도 다른게 들리더라고. 아마 자신만의 가장 잘 맞는 드릴을 골라 쓰는거겠지.. 좋아 좋아.. 앞니를 무슨 골룸처럼 테이퍼각 줘서 갈아내고 일단 레진으로 임시치아 만들어줬다. 이게 좀 갈아내고 만들어서 그런지 기존에 레진 때워뒀던 것보다 모양이 훨 맘에 듬. 분명히 결제 전 안내사항에 "첫 임시치아는 매우 못생김, 알았으면 옆에 사인" 써 있었는데 생각보다 만족.
셋째날에는 깨진 위쪽 잇몸치료.. 잇몸치료는 좀 과격한 버전의 스케일링같다. 마취 주사를 쿡쿡 찌르고, 뭔가 쑤시고 빠각까득 갈아내는 소리가 무서운데.. 아마 마취가 안되어 있었다면 나는 비명 지르다 죽었을 것이다. 잇몸 아래쪽도 후벼서 치석을 제거하나보다...
넷째날에는 아랫쪽 잇몸치료 한 다음 치기공소에서 온 피드백대로 윗니를 좀 더 갈아냄. 음악은 하필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나오고 있는데, 드릴 소리가 들리니까 매우 괴기스러웠다.
며칠 기다리니 치과에서 카톡 와서 '치아 3D 디자인' 보여주고 내 의견을 물어보더라. 어차피 봐봐야 잘 알지도 못할건데 말이지.. 지금 끼워둔 레진 임시치아도 만족감이 상당히 좋다. 핫도그 같은거 먹을 때 더 이상 앞니에 안닿게 송곳니로 씹을 일이 없고, 아이스크림 먹을때, 뭐 쫀득한거 먹을 때 뚝 떨어질 걱정 안해도 되니 너무 좋음 ㅠㅠ
다섯번째 방문에서 디자인대로 온 1차 임시치아를 끼워보고 색이나 세부적인 내용을 수정한다. 의사 선생님이 컬러칩을 대주며
"흠 어때요? 이게 좋아요, 저게 좋아요? 잘 모르겠죠? 그땐 제가 하라는대로 합니다. 제가 빅데이터에요."
아잌ㅋㅋ 근데 정말 의사선생님 말대로 하니까 딱 좋게 나온다. 첫 임시치아, 1차 치아, 2차 최종 치아 총 3개의 치아를 만드는 셈이다.
11월 중순에 여섯째로 방문해서 2차 최종 치아 설치.. 1차 치아를 벗겨내니 이가 시려서 정말 추운 겨울에 옷 벗고 밖에 나간 기분이었다. 누워있는 내내 얼른 씌워주세요.. 얼른 씌워주세요.. 하고 생각했지.
6번째 방문 끝에 드디어 지르코니아 크라운 완성. 앞니 두개, 원장님 딱 보더니 "아아 걸작이다-" 하심.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그라데이션, 그리고 투명도! 잇몸과 완벽한 핏을 위해 한 여섯번인가 내원하며 3차에 걸쳐 본 뜨고 임시 치아 만들고 3D 모델링 돌리고 색상 정하고..
이젠 더 이상 삼각김밥 먹다가 앞니 떨어질 걱정 안해도 된다! 다만 게장이나 갈비는 조심하라함.
ps. 원장님 치료 후기 올라옴. 진짜 디테일하다.